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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Web 2.0 / Semantic Web

김중태님의 KAIST 강연 - IT의 과거, 현재, 미래

매주 금요일마다 있는 전산학 세미나 시간, 바로 어제 김중태님의 강연이 있었다. 옛날에 박수만님의 '실용 예제로 배우는 웹표준' 출판 기념회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는 분이었고, 블로그도 꾸준히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기대m하는 강연이었다. 주제는 IT의 과거, 현재, 미래로, IT 기술이 얼마나 급격한 변화를 거치며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IT 업계에서 돈을 잘 버는 방법(?), Yag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마이엔진에 대한 약간의 홍보 등을 위주로 말씀하셨다.

다른 것보다 이 강연이 좋았던 점은, 기술적 관점이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 인터넷을 바라보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배경 지식들은 이미 그분의 블로그를 통해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실제 말로 들으면서 전달받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정말 별 것 아닌 것이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어떤 식으로 사람 마음을 사로잡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얘기해주셨다. (유치원에 부모들이 아이들의 노는 상황을 볼 수 있는 원격 인터넷 카메라를 납품할 때 어떻게 원장을 꼬드겨야 하는지라든가, 출판사에게 공짜로 CD 만들어주겠다고 하고 컨텐츠 원본을 얻어오기라든가...)

중반까지는 우리가 얼마나 빠른 IT기술 변화를 겪어왔는지, 2000년 1월 1일에 ADSL을 쓰는 가구가 1만 5천세대 뿐이었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쭉 설명해 주셨다.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한 건 2002년 월드컵 무렵이었고, 네이버 지식인이 시작된 것은 2002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5년 정도밖에 안 된 기술을 마치 옛날부터 그랬다는 듯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나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발신자 번호표시 서비스. 이로 인해 우리는 휴대전화를 받을 때 '누구세요? 여보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의식 중에 일어난 변화라 생각을 못해봤던 것인데 딱 그렇게 짚어주시니 정말 간단한 기술 하나가 문화와 삶을 변화시킨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었다.

끝에 가서, 김중태님은 결국 웹의 발전 방향은 오프라인과 똑같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오프라인에서 생각하는 일종의 mental model이 웹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온라인 쇼핑몰의 장바구니 기능을 들었는데, 국내 대부분의 온라인 쇼핑몰들은 상품 정보 보기를 한 다음 장바구니에 넣기를 클릭하고, 장바구니에 다 넣으면 장바구니 화면을 찾아가서 결제를 하고.. 이런 식인데 실제 우리가 이마트 같은 데서 쇼핑할 때 그렇게 하냐는 것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계속 볼 수 있고, 우리가 하는 동작은 장바구니에 물건을 넣거나 빼는 게 전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웹도 그렇게 단순화되어야 한다면서, Ajax를 이용해 구현된 드래그&드롭 장바구니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미 Ajax 기술과 관련된 구현 예제들을 알고 있었기에 기술적으로는 별로 신기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문화적 관점'에서 보는 느낌은 색달랐다. (이와 관련해서 월마트가 왜 우리나라에서 실패했는지와 같은 얘기도 하셨다)

오프라인과 같은 웹, Easy Web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마이엔진에서 야그를 만들게 된 것은, 웹서핑을 할 때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누가 어떤 페이지를 보고 있는지, 누가 이 사이트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등을 알 수 없었고,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 웹과 오프라인의 가장 큰 괴리였다는 것이다. 사실 야그도 블로고스피어를 통해 첫 버전이 나올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비슷한 서비스들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그리 신기하지는 않았다. (물론 몇가지 차별화된 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직접 기획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야그가 지금은 별로 대단해보이지 않아도 그것을 만들어가는 철학이 있다는 것 때문에 높이 평가해줄 수 있게 되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있었다. 20대 때에는 무엇을 하셨나요와 같은 질문도 있었는데, 나는 '블로그와 위키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그러면 개인홈페이지 방명록 - 카페 - 싸이월드 - 블로그로 발전해온 글쓰기 플랫폼이 어떻게 변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직접적인 답변은 못 얻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프라인처럼 변해갈 것, 그리고 점점 더 쉬워질 것이라는 것이 포인트라고 했다. 내가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추천과 관련, 스팸 필터링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해주셨는데, 사람들이 어떤 메일이나 글을 보고 몇 초 안으로 닫아버리면 스팸이라고 판단한다고 볼 수 있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런 동작을 취한다면 그 글에 패널티를 부여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기술적 구현이나 서비스 단계에서는 좀더 고려할 것이 많겠지만.) 추천을 눌러서 DB에 count가 1이 올라가고 이런 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추천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 인간적인 웹이 아닌 것이다.

듣고 나서 Ajax 기술이, 기술적으로는 이미 5년 이상 전부터 가능했던 것이지만 왜 이제서야 뜨기 시작했는지가 이해되었다. 기술은 있으되 그것을 그 누구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Google Maps와 같은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고, 그렇기에 우리들은 공부를 열심히-_- 해야 하고 또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이공계 기피니 뭐니 하면서 의사/한의사, 판검사, 변호사 등에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고 있지만, 그런 직업들은 기본 보수가 높고 안정적이긴 해도 IT기술, 특히 웹에서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는 얘기를 하셨다. 시간당 노동에 대한 인건비가 아무리 높아도, 인터넷 서비스나 프로그램, 혹은 UCC 인터넷 강의 하나 잘 만들어 수백, 수천만명이 이용하게 되었을 때 들어오는 수익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제대로만 시장에 먹혀들면, Google의 성장에서 보듯 단시간 내 세계 20대 재벌에 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우리학교에서도 그런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나와서 돈을 많이 벌어줘야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고(혹은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기피를 하지 않게 된다는 자연스런 시장 논리가 성립할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원래 예정 강연 시간보다 거의 2배 가까이 초과했던 긴 시간이었고, 전날 새벽 5시에 자서 매우 피곤했음에도 한 순간도 졸지 않고 끝까지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재밌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들이었다. 김중태님이 목표하시는 것처럼 그분의 강연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통찰을 가지고 IT 산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

ps. 이 강연 덕분에 지금까지 생각이 변하지 않았던 이공계 위기에 관한 쪽지과제를 고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전반적인 관점은 나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좀더 자세하게 잘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