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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Hot Issue, Services

웹브라우저 업그레이드 캠페인에 대한 단상

올해 초 해외에서 잠시 진행되었던 웹브라우저 업그레이드 캠페인이 얼마 전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캠페인의 원래 의도는,
더욱 많은 사용자들이 다양하고 최신 웹표준 기술들이 적용된 웹브라우저를 사용하면:
  • 더이상 IE6와 호환성을 맞추느라 불필요한 삽질을 개발자들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따라서 이를 더욱 창의적인 서비스와 제품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 사용자들 또한 더 빠르고 보안이 뛰어나며 탭브라우징 등 인터페이스가 향상된 웹브라우저들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인터넷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할 수 있다.
  • 덤으로 한국에서 Microsoft의 시장 독점을 막음으로써 더욱 건전한 웹생태계가 형성되고 장기적으로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다양성으로 인한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 그러니 IE7, Firefox, Opera, Chrome 등 최신 웹브라우저들을 사용하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언뜻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캠페인 자체를 막상 들여다보면 "Save the developers!"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개발자들이 사용자들에게 "제발 최신 웹브라우저 좀 써서 개발자들 삽질 좀 덜하게 해주세요"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비판들이 생겨났다.

  • 실컷 ActiveX며 IE에 최적화된 웹사이트들을 개발해온 장본인들이 개발자인데 이제 와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개발자 편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개발자들이 먼저 개선해야 할 것을 왜 사용자더러 노력하라는 것이냐. [작은인장님 블로그]
  • 사용자 입장에서 볼때 개발자들이 말하는 웹표준 이런 거 잘 모르겠다. 이미 IE6로도 인터넷 잘만 쓰고 있는데 왜 바꿔야 하지? [나무벌레님 미투데이]
  • 어쨌거나 저쨌거나 사용자가 원한다면 IE6가 아니라 IE5라도 지원해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 문제를 찾으려면 다른 곳(왜곡된 하도급 관행 등)에서 찾아라. [죽음천사님 댓글]
  • 캠페인 의도 좋은 건 이해하지만, 구호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바메님 댓글]

왜 이런 비판이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 ActiveX로 개발해야 하는 개발자를 둘러싼 국내의 정치적·경제적 주변 환경 문제 - 표준지향 개발자들과 그렇지 않은 개발자들이 동일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 구호 자체가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고 너무 개발자 중심적이다.
  • 우리나라의 웹 환경이 이미 IE6에 너무 잘 맞춰져 있어서 사용자들이 웹브라우저를 바꿀 필요를 못 느낀다.
  • 위 요인들이 합쳐져서, 결론적으로 사용자에게 와닿지 않는다.

문제는, 비록 캠페인의 의도 전달 방법에는 잘못된 점이 있을지라도, 이것이 개발자들이 현재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동들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용자들에게 단순히 탭브라우징 같은 인터페이스로 어필할 수도 없고, ActiveX 환경 때문에 IE 계열이 아닌 웹브라우저를 쓰라고 무조건 권할 수도 없고, IE7이 정말로 모든 면에서 IE6보다 향상되었다면 모르겠으나 컴퓨터 상태에 따라 IE6보다 못한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이미 잘 쓰고 있다면 더 나은 것이 있더라도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는 귀차니즘까지 더해져서 소 귀에 경 읽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는 참으로 난감하다.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웹브라우저를 업그레이드하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예전 웹브라우저로 사용할 수 없거나 혹은 매우 느리거나 하는 킬러 웹서비스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나 네이버가 IE6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_-) 불행히도 이것이 마치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상황처럼 그런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위해선 시장 조사에서 그러한 최신 웹브라우저를 쓰는 사용자들이 일정 비율 이상 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최신 웹브라우저 사용자가 예를 들어 50%나 된다고 해도, 기존 IE6 사용자들을 여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IE6에서 아예 안 돌아가는 서비스가 등장한다는 건 상당히 요원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냥 쓰던 사람들은 어차피 그냥 쓴다는 얘기다.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IE6에 매우 심각한 보안 결함이 발견되어서 어쩔 수 없이라도 업그레이드하게 만드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확률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고, 어쨌든 Microsoft가 그동안 수없이 많은 보안 패치를 해오며 나름(?) 안정화되어버린 상황에서 설령 그런 보안 결함이 발견된다고 해도 웹브라우저의 업그레이드보다는 보안 패치 수준에서 해결될 공산이 크다.

결국, 이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정부 주도로 법적으로 다양한 웹브라우저·웹표준 지원을 강제하든지, 관련 업계 개발자들 모두가 피와 살을 깎는 노력으로 웹표준 서비스들을 개발하여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든지 하는 방법 뿐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관련 결정권자들이 웹표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가능한데 아직도 그 수준까지는 한참 힘들어보이고, 후자의 방법은 개발자들이 너무 오랜 기간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국내의 시장 상황과 그동안의 경험으로 봤을 때 Windows XP 이하를 애초부터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식의 실현불가능한(...) 상황이 닥치지 않는 이상 사용자들의 보수적인 특성이 계속 발목을 잡을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소프트웨어의 하위호환성 문제와도 관련이 높다. IE6가 어찌됐건 꽤나 오랫동안 장수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수많은 인트라넷 소프트웨어들은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웹서비스들이야 웹표준을 지향하는 개발자 혹은 경영진의 판단, 사용자들의 대세 등으로 그나마 바뀔 가능성이 높지만, 그러한 인트라넷 소프트웨어들은 하위호환성이라는 장벽에 갇혀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는 한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궁금한 건 과연 그 수요가 전체 시장 판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아직 그런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꽤 길게 했는데, 그래서 사실 내가 몇달 전부터 준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책을 쓰는 것이다. 어차피 한정된 블로고스피어에서 밤낮으로 토론해봤자 정말로 경영자들과 정부가 움직여야겠다라고 느낄 만큼의 시장 반향을 불러일으키긴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분명 블로그가 책에 비해 더욱 지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북미나 유럽 같은 곳이라면 가능할 듯―아직 국내 시장에서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라디오·TV·신문 같은 대중매체나 책을 통한 것이다. 공익광고협의회 같은 곳에서 웹표준 캠페인을 벌여줄 가능성은 없는 것 같고(-_-), 그렇다고 직접 광고를 기획·제작할 수 있는 개발자는 없을 테고(있다면 만원 정도는 기부할 자신 있음), 결국 개발자 입장에서 선택해볼 만한 것은 책이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내가 쓰고 있는 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가치를 설득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여기에는 웹브라우저도 포함되며 그외 다양한 부문의 소프트웨어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설득하는 것. 안 그래도 보수적인 사용자들이 움직이게 만들려면 어떡해야 할지 책을 쓰는 중반 단계에 이른 지금으로서도 불안하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말 없는 말이라도 지어내서 낚시를 해야 될 판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고. ㅠ_ㅠ; 하지만 책이 별로 안 팔린다고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많은 사용자들의 인식이 바뀐다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언젠가(개발자들 머리털 다 빠지기 전이길 바랄 뿐...) 우리나라의 특수하게 꼬인 상황을 풀어갈 싹이 되어준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어쩌다가 한국의 (웹)개발자들이 이런 암울한 상황에 처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웹개발 일을 하게 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을 무렵엔 좀 나아질 수 있을런지.